책 속 문장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품고 사는 음식이 있다. 우울할 때 떠오르고, 기쁜 날에도 자연스레 찾게 되는, 그런 ‘최애’ 음식 말이다. 내게 탕수육이 그렇다. 자다 깨서 처음 떠올린 음식도, 치과 치료를 받고 피가 멈추길 기다리다 처음 베어 문 음식도, 재난지원금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음식도, 오래 만난 연인과 이별한 날에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언제나 탕수육이었다._40쪽
나와 친분이 없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워지면 내가 얼마나 ‘먹는 일’에 진심인지 금방 눈치챈다. 이번 끼니를 먹으면서 다음 끼니를 생각하고, 소문난 맛집을 소문나기 전부터 찾아다니며, 궁금한 맛집은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먹는다. 그뿐인가. 밥은 쌀이 제일 중요하다며 맛있기로 소문난 쌀을 찾아 헤매고, 계절이 바뀔 때는 산지에서 올라온 제철 재료로 음식을 꼬박꼬박 만들어 먹으며, 여행을 갈 때도 갈아입을 옷보다 후추와 올리브오일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다._45~46쪽
옆자리에서 회식하는 무리가 불콰하게 취해서 점점 목소리가 높아진다. 중국집이란 원래 그런 공간이다. 목소리가 조금 올라가도 괜찮고,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어울리는 공간. 경쾌하게 웍을 움직이는 소리와 기름진 음식이 어우러져 기분이 고양되고 하루의 피로도 사라지게 만드는 곳. 사방을 가득 채운 붉은 톤의 인테리어도 기분 좋은 흥분감에 한몫 더한다._52~53쪽
책 만드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걸 알기에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질문들을 삼키고, ‘이번 주만 더 기다려보자’며 마음을 누른다. 고기에 찹쌀옷과 튀김옷을 여러 겹 입은 탕수육처럼 에둘러 다른 말과 함께 하고 싶은 말을 슬쩍 전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잊힌 원고를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는 외주 디자이너의 가시밭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고, 그래도 무사히 두 권이나 마감했으니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은 넣어두고 신나게 탕수육을 먹어보자는 마음으로 작업실 문을 닫고 나왔다._114~115쪽
책을 마감하기 전, 처음 사용하는 까다로운 종이의 인쇄를 앞두고 실제로 인쇄될 용지에 미리 인쇄를 해보기 위해 종이를 사러 나왔다가 안동장을 발견했다. ‘안동장’이라는 붓글씨체 한자가 멋있게 휘갈겨져 있는 오래된 간판이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_126쪽
“여긴 자장면 안 하시나 봐요?” 직원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장면은 중국 음식이 아니거든요.” 그 말을 내뱉는 직원의 목소리에 묘한 자부심이 실려 있었다. 자장면이 한국식 중국 음식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중국집을 한다면 자장면은 필수 아닐까 생각했다가 오히려 이런 자신감은 내 회사를 시작한 지금 내게 필요한 마음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_133쪽
출판단지를 드나들 일이 줄어든 지금, 더는 지목로에 빚지지 않아도 되는 일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조금 아쉽다.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맛있는 기억은 계속 빚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종이와 나무에 진 빚은, 더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드는 일로 갚아나가야겠다고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_166쪽